
유럽은 냉전의 주요 무대였고 여러 충돌이 있었다. 베를린 봉쇄, 헝가리 혁명,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등 군사적 충돌에 대해 그 배경과 전개, 그리고 그 결과를 알아보자. 베를린 봉쇄: 냉전의 첫 군사적 대립베를린 봉쇄(1948-1949년)는 냉전 초기 미국과 소련 간의 첫 번째 군사적 충돌로, 베를린을 둘러싼 긴장이 고조된 사건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독일은 연합국에 의해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의 4개국이 분할 점령하게 되었다. 그중 베를린은 소련의 점령 구역 내에 있었지만, 그 자체도 다시 4개국에 의해 분할되었다. 이로 인해 서방 연합국들이 관리하는 서베를린은 소련의 점령 구역인 동독에 둘러싸인 섬과 같은 상태였다. 베를린 봉쇄는 서방 연합국과 소련 간의 이념적 갈등에서 비롯되었다...

냉전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양대 진영 간의 이념적, 군사적 대립이었다. 나토(NATO)와 바르샤바 조약을 중심으로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으며 핵무기 경쟁은 냉전의 상징이 되었다. 냉전 시대 유럽에서 벌어진 군사적 대립을 나토와 바르샤바 조약, 그리고 핵무기 경쟁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나토(NATO)의 창설과 서유럽 방어 체제냉전은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미국과 소련 간의 긴장 관계에서 시작되었다. 전후 유럽은 폐허가 되었고, 소련이 동유럽 국가들에 공산주의 정권을 세우면서 서유럽과 동유럽은 이념적으로 분열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방 국가들은 소련의 팽창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을 중심으로 군사적 동맹을 결성하게 된다. 그 결과가 바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Nor..